안녕하세요. @armdown ('아름다운') 철학자입니다. 오늘 피드를 보다 보니, 스팀잇에서의 '표절' 즉 '글 베끼기'가 문제더군요. 그래서 문득 전에 이 문제를 고찰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특히 스팀잇처럼 '생각의 가치' 또는 '창작자의 권리'가 보호되어야 할 곳에서는 함께 공유해 볼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보고서 베끼기 ― 보이지 않는 범죄
―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학문하는 양식의 문제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생들 사이에서 보고서를 베끼는 일이 일상화가 되었다. 보고서를 보여주고 아니고는 종종 친구 사이의 ‘의리’ 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실제 공간은 물론 인터넷에서는 보고서를 쓰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가 거래되고 있는데(~~장사꾼도 이용자도 다 문제다~~), 실제로 그 자료의 태반은 비슷한 주제에 대해 남이 쓴 보고서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런 현상에 무감각하다. 이미 보고서 베끼기는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학과 사회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다. 아니 그것은 이미 뿌리부터 뒤흔들리고 있는 대학과 사회의 한 단면이자 징후이다.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실 학문 내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베끼기는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불가피하다. 특히 기존의 지식을 얼마나 잘 숙지해서 소화하고 정리하느냐를 보는 학부 수준의 보고서는 더더욱 그렇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이지만, 해당 분야의 선배들이 했던 작업이 완전히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래서 선생은 학생에게 참고가 될 만한 책들 몇 권을 ‘참조’해서 글을 써오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베끼기는 나중에 공부가 계속될 때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펼쳐 가기 위한 자양분이 된다. 여기에서는 창조적으로 잘 베끼는 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는 베끼기는 이런 베끼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헌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과거에도 경우에 따라 보고서 베끼기가 묵인되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 내가 아는 한 교수는 '진짜로 베끼는 것’을 내놓고 용인해 주기도 했다. 그 교수만 그랬던 건 아니고 당시로서는 그것은 상당히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남이 쓴 것을 그대로 베끼더라도 그 많은 분량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다 보면 내용을 좀 알게 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대학의 공부 환경이 지금과 아주 판이하게 달랐다.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학생은 인문 사회 계열뿐 아니라 이공계에서도 과를 통틀어 몇 명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은 게임기로도 쓰기 어려운 사양을 갖춘 컴퓨터가 전부였다. 이런 이유로 모든 보고서를 원고지나 보고서 용지에 손으로 써서 내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이런 방식의 베끼기까지도 결코 용인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이제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어 아무런 노력 없이도, 심지어는 한번 읽어보지도 않고서도, 보고서를 쓸 수 있게 되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더 중요하게는 모든 베끼기는 학문 행위의 본질을 왜곡하고 나쁜 삶의 방식을 몸에 배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이것을 몇 가지 차원에서 살펴보자.
우리는 보고서 쓰기를 너무 가볍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보고서를 고등학교 때까지 하던 하기 싫은 숙제 정도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학부에서 쓰는 보고서는 일종의 훈련 절차이다. 그것은 자기만의 생각을 펼쳐 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보고서를 쓰는 일은 기존 지식의 정리를 의미할 뿐 아니라 나아가 기존 지식을 자기 힘으로 정리하는 학습 과정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말해 그것은 자기 관점의 배양이자 논문 쓰는 연습이다. 그러니 첫 단계부터 베끼는 습관이 밴다면 나중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게 되고 말 것이다. 남이 잡은 물고기만 먹다 보면 스스로는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또한 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보고서를 베끼는 습관도 잘못된 것이다. 보고서 베끼기는 명백한 표절이다. 단순히 남의 것을 베끼는 것을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자기만 볼 습작 노트에 베껴쓰는 일 같은 것~~), 베낀 것을 자기가 직접 한 것으로 속이면서 뭔가 이득을 볼 때 표절이 된다. 보고서의 경우 거기에는 학점이 걸려 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보고서 베끼기는 나중에 남의 논문을 베끼는 행위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외국 논문이나 책을 베껴서 자기 논문이나 책인 양 발표한 많은 중견 학자라든지 심지어 제자의 논문을 베꼈다는 사례를 접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단지 부끄러운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둑질이고 사기이며 명백한 범죄 행위이다. 처음에는 학점이 문제였겠지만 나중에는 학문적 명예와 돈과 지위가 걸린 문제가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남의 돈을 빼앗는 것보다 눈에 잘 안 보이는 남의 생각을 훔치는 일이 더 잘못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모든 표절은 학문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막대한 장애가 된다. 표절이 만연하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나아가 성실하게 노력하려는 자세를 꺾고 허무감을 보편화시킨다. 베끼면 되는데 굳이 뭘 노력하느냐는 자포자기 의식이 확산되고, 베끼기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안이하고 나태한 학문 풍토를 낳게 된다. 그것이 한국 학문 수준의 천박함을 낳았다. 일례로 1980년대 유행했던 마르크스주의나 1990년대 유행했던 포스트모더니즘 연구는 외국의 논의를 베끼는 차원에서 거의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었는데, 그러면서도 그 논의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걸 기회로 대학과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할 수가 있었다. 후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으르고 무능력한 사람이 교수랍시고 있는 것은 얼마나 소모적으로 보이는지 모른다. 그러니 공부는 하지 않고 연줄 만들기를 위한 노력에 몰두하는 것도 당연하다.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것에 대한 푸념과 반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아직도 노벨상이 요원하게만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노벨상을 반드시 타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성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원인의 뿌리는 이미 대학 초년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베끼기 문제는 결코 개인의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베끼기와 표절은 문화 현상이다. 그것은 한국의 대학 사회, 지식 사회,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그것은 드라마나 대중가요 등 사회 곳곳에 만연한 표절 문화의 일부이며, 베끼기를 용인하는 문화 속에서 더욱 번성한다. 보고서 베끼기가 사회 전체가 공범이 되어 저지르고 있는 범죄 행위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는 한 어떠한 학문과 사회 발전도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뭐든 스스로 노력하고 길러내고 만들어내려고 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쉽게만 하려는 태도가 만연해 있다. 대학의 위기를 말하기 이전에 사회 풍토의 위기를 말해야 한다. 나쁜 것을 나쁜 것이라 깨닫지 못하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인데, 우리 사회는 바로 그 가장 나쁜 상태에 있다. 보고서 좀 베끼는 것 갖고 말이 너무 지나쳤다고 얘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어느 시인의 말을 잘 베껴서 말하자면, 그 경우 그 사람은 이미 아무도 욕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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