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가 오로지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건 착각이다. 집에 가는 길을 일부러 돌아가본 사람은 안다. 기어가는 개미의 눈높이로 길거리를 봐본 사람은 안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한 세상이, 이 익숙한 세계가, 얼마나 낯선지를. 농담이 아니다. 지금 당장 집 밖으로 나간 뒤 쭈그려 앉아 문을 올려다 보라. 그리고 느껴보라. 당신이 발로 차 닫았던 그 낡고 녹슨 철문이 얼마나 생소하게 다가오는지.
사람들은 이 세상이 빡빡한 질서를 고수하는 불변의 수도승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세상의 다양성을 알아채지 못하는 건 우리가 세상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세상에 집중해 보라.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뽐내고 싶어하는 사물들의 환호성이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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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Value, 1951. 르네 마그리트
우리가 이 세상에 낯섦을 느끼기 시작할 때 철학은 시작된다. 왜? 철학은 지식에 대한 사랑이다. 지식은 의문에서 나온다. 의문의 연료는? 호기심. 그렇다면 이 호기심을 싹 틔우는 게 무엇일까? 바로 낯섦인 것이다.
우리는 생각없이 소리를 지르며 방안을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의 삶을 부러워 한다. 나도 저 아이들처럼 생각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린이야 말로 진정한 사색가다.
아빠 나는 왜 태어났나요?
그건 엄마가 너를 임신했기 때문이야.
왜요?
아빠가 엄마랑 결혼을 했거든.
왜요?
엄마가 예뻤어.
왜요?
얘야 시간이 너무 늦었구나. 이제 잘 시간이란다.
어린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강박적으로 탐구한다. 이 모든 세상이 낯설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따분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계는 알고 싶은 것으로 가득한 바다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그 바다로 나가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큼 가득가득 지식을 낚아 올린다.
불행하게도 아이는, 자신이 많은 것을 알았다고 느꼈을 때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세계에 대한 질문을 멈춘다. 맑고 푸르던 호기심의 바다는 검고 끈적끈적한 일상이 되어 어른을 집어 삼킨다. 어른은 심해로 침몰하고, 남은건 전동차의 빈 자리를 향해 질주하는 탐욕과, 앉자 마자 잠에 드는 나태함과, 스마트폰으로 야구나 시청하면 그만인 별볼일 없는 퇴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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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restler's tomb, 1961. 르네 마그리트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깨닫지 못하는 이상 우리의 삶은 여전히 썩은 내를 풍기는 생선일 뿐이다. 지긋지긋한 권태. 지리멸렬한 시간들. 세상에서 다시 낯섦을 느낄 때 호기심의 톱니는 돌고 일상은 다시 따뜻한 탐구열로 차오를 것이다. 그러니 껍질을 벗기자. 무관심으로 덕지덕지 때가 낀,
이 세상의 껍질을 벗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