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질이 있는 지 알고 싶습니까, 그럼 링에 오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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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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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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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하고 오로지 문장을 주물럭거립니다. 책상에서 열심히 머리 쥐어짜며 하루 종일 단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조금 올려본들 그것에 대해 누군가 박수를 쳐주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잘했어, 잘했어"라고 토닥여 주는 것도 아닙니다. 혼자 납득하고 혼자 입 꾹 다물고 고개나 끄덕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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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왔을 때도, 그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주목해주는 사람이라고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바로 그런 작업입니다. 엄청 손은 많이 가면서도 한없이 음침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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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장편' 소설 작업에 들어가면 그런 세세한 밀실에서의 작업이 날이면 날마다 계속 됩니다. 거의 끝없이 계속 됩니다. 그런 작업이 원래 성품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혹은 그게 그리 고생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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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나는 오랜 세월 지겨운 줄 모르고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내는 작가들에 대해 한결같은 경의를 품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이 써내는 작품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호감이나 비호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이십 년 사십 년에 걸쳐 직업적으로 소설가로 활약하고, 혹은 살아남아서 각자 일정한 수의 독자를 획득한 사람에게는 소설가로서의 뭔가 다른 강한 핵(core)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내적인 충동(drive). 장기간에 걸친 고독한 작업을 버텨내는 강인한 인내력. 딱 잘라 말해서 이런 게 소설가라는 직업인의 자질이자 자격이라고 무방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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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내 같은) 특별한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아마도 '재능'과는 좀 다른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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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런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분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오직) 단 한 가지, 실제로 물에 뛰어들어 과연 떠오르는지 가라앉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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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한 말이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런 식으로 생겨 먹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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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에, 어서 오십시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