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 차별(Discrimination)에 대한 나의 소고
이론과 현실의 차이
오랜만에 스팀잇에서 좋은 글들을 읽다가 눈에 들어온 포스트에 대해서 문득 나의 경험이 떠올라 끄적일 수 밖에 없었다.
윗 글은 철학에 기반해 필자분이 본인이 자유지선주의자(Liberitarian)임을 어필하는 내용인데, 개인이 자신이 소유하는 장소에서는 타인을 차별할 권리가 있음을 라스바드라는 학자의 견해를 빌어 적었다.
> 어떤 행위가 타인이 소유하고 있는 자기소유권(Self-Ownership)과 재산에 대한 부당침해가 없다면 그것은 자유의 범주에 속하는 행위
필자가 본인 집에서 생일파티를 열 경우, 본인과의 친밀도에 따라 사람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얼핏 보면 간단명료하고 타당한 가상의 예시를 들었다. 이와 반대로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출자해 만든 공공장소는 사유지가 아니기 때문에 차별하면 안된다는 것.
간단히 말해
사유지/자기소유권 = 차별권이 있음
공공의 장소 = 차별을 하면 안됨
상당히 명료하면서 합리적인 결론이다. 얼핏 보기에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전혀 없어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나의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기저에서 가치관을 바꾸게 만든 학창시절의 경험이 떠올라,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죄송한 말이지만, 이렇게 간단명료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것 자체가 그 동안 차별과 불평등의 이슈를 불편하게 생각해오지 않은 한국이기에 가능한 건 아닐까.
대학시절, 럭비로드의 밤
[IMAGE: https://steemitimages.com/DQmesDLoSpsBTFEZGfMP3wJeozCxbpXBA619Grq6HfTk1KA/UVA_Mad_Bowl.jpg]
여기가 버지니아 대학교 근교 럭비로드 출처: 위키피디아
버지니아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 학교 소유 캠퍼스 바로 옆에 럭비 로드(Rugby Road)라는 길이 하나 있고 그 길을 따라서는 19세기, 20세기 초에 지은 상당히 큰 저택, 벽돌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 럭비로드의 집들은 평범한 가정집도 있지만 대다수가 프래터니티(Fraternity), 그리고 여성 전용의 소로리티(Sorority) 하우스들이었다. 프랫(Frats)과 소로리티(Sorority)가 무엇인지는 간단히 여기
북미 뉴스, 특히 대학가의 소식을 관심있어하는 (극소수의)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이 소위 학생 '사교클럽'들은 자유민주주의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의 유수 대학 내의 친목회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상명하복식 문화, 폐쇠성, 암암리 성폭력을 조장하는 등 구린내가 많다는 점을 아실테다. 문제는 이 사교/친목회들은 역사가 오래됬고, 영향력있는 졸업생들의 후원을 받아 학교 운영에 영향을 주거나, 저택을 자산운용하는 등 무시 할 수 없는 힘으로 버젓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1학년 때 였나 2학년 때 였나, 대학교가 마냥 신기하고 즐겁기만 하던 시절, 나는 일본과 미국 등 국적은 다르지만 함께 입학해 친해진 친구들과 금요일 밤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 웃고 떠들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들은 소식으로는 럭비로드의 집들이 오픈하우스 파티를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럭비로드에서 월세를 내며 사는 선배들 집에 초대를 받기도 했던 나는 가자가자 분위기를 업 시켜서 무리와 함께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 중 노래를 크게 켜고 대문이 활짝 열려있는 집 마당에 사람이 와글와글하길래 들어가보려 하자 맥주 한병 씩 들고 서있던 남자가 우리 그룹을 세우곤 나와 일본인 여자애를 막고 백인 친구는 들여보내는 것이다.
나는 애초에 이런 경우를 난생 처음 보아 자리에 얼어붙었고, 일본인 친구가 살짝 성을 내며 왜 우리는 안되냐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This is a private party" 프라이빗 파티다 는 것 뿐.
들여보내졌던 백인 친구들도 뻘쭘해하더니, 자기들이 알아서 다시 걸어나왔고 우리는 이런 썩은 곳 필요없다면서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그 후 무엇을 했는지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 '프라이빗 파티'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던 기억은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다.
http://swartz-legal.com/2013site/wp-content/uploads/2016/10/Racial-Discrimination-300x200.jpg
나의 경험과 세계관은 사유지인가요, 공공의 영역인가요?
한국인 어머니 아버지로 부터 나서 대한민국에서 자란 나로서는 꽤나 엄청난 충격이었고, 그 이후로 잠시 잊고있을 법 하지만, 간혹 미디어에서 '차별'의 이슈가 나오면 이 사건이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분명, 그 럭비로드의 집은 어느 백인 프래터니티(Fraternity), 또는 그 프래터니티의 멤버가 사는 집이었을 것이고, 그들은 분명 자신의 '사유지'에서 '개인재산권'에 근거해 나와 일본인 친구를 차갑게 거부했다, 다만 자기들도 전혀 생면부지인 내 백인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문 안으로 초대하면서말이다
"애초에 남의 집 파티에 들어가려고 한 너가 잘못생각한거야" 라고 넘기면 간단할 지도 모른다. 자유지선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을테다. 사실 이런 상황에 대한 반대급부로 아시아인만 초대받는 아시안 프래터니티가 생기거나, 국적/인종에 기반한 클럽들('한인학생회' 등)이 미국 대학에는 무수히 존재했다. 결국 이 작은 그룹들은, 자기들 보다 먼저 폐쇠적인 세계를 만든 이들로부터 거부당한 기억을, 똑같이 배타적으로 선을 긋는 '자유'를 행사하며 학생사회를 분열시켰다.
무엇보다 나는 럭비로드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생겨버렸고, 그 이후로는 발걸음을 딛지 않게 되었다. 그 금요일 밤 사건은 분명히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위 원글의 저자분인 @rothbardianism 님은 차별은 편견과 집단멘탈리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 자체는 옳지만, 문제는 편견과 집단멘탈리티를 가진 집단이 흔히 '사유재산'과 '자유'를 들먹이며 자신들의 배타성을 합리화하고 마이너리티들을 핍박한다는 것에 있다.
자기소유권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온 현재.
세계에서 가장 배타적인 나라 중 하나 일본에서 필요없으면 딱히 한국인임을 드러내지 않으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럭비로드의 프래터니티 집을 넓혀서 한 사회, 한 국가를 생각해보자. 일본은 일본말을 쓰며 이 나라에 세금을 내는 일본인들이 '소유'하는 나라이기에, 그렇지 않는 타지인들을 배척하는 것은 '자유'라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느니 어쩌니 하며 사람들을 죽이고 재산을 몰수하고 차별했던 것에 대해, 21세기인 지금 나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면, "정말 안됬지만 어쩔 수 없어. 여긴 일본이고 일본인이 아니면 차별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이 가치관을 기저에 가진 사람들에겐, 일제강점기로 주제가 바뀌더라도 당시 "조선은 일본제국의 일부, 일본의 소유였기 때문에 그 안에선 우리 맘대로 한 것이고, '대동아공영권'의 사유재산을 침범하려하던 구미열강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것" 이라는 논리로 매우 자연스럽게 귀결된다. 말투만 부드럽게 말할 뿐....
현실에서 이런 예시들을 마주치며 사는 사람들에게, '사유지에서는 차별할 자유고 있고, 공공장소에서는 조심한다' 라는 간단한 명제로 명쾌하게 답변이 될까?
특히나 대한민국은 광복 이후 지난 수십년간 운좋게(?) 겪을 일이 없었던 마이너리티, 인종, 성차별 이슈가 이제와서 수면위로 올라오니, 여기에 대해 '자유지선주의'를 들이대며 난 최근 추세에 의문이 드네~ 라고 태연한 척 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한국인 누릴 수 있는 지적 특권(intellectual privilege)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