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도약을 위한 단련법
만화 <드래곤볼>에서 주인공 손오공이 처음 권법을 연마할 때 훈련 방법 중 하나가 생각난다. 아주 무거운 쇠를 종아리에 차고 생활하는 것이다. 무거운 쇠를 차고 지내면, 처음 얼마간은 걷거나 뛰기도 힘들 정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단련이 되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가능해진다. 그 훈련 방법은 단순히 다리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니었다. 손오공이 몇 달이 지나 그 쇠를 종아리에서 뺐을 때, 손오공의 몸은 너무나 가벼워서 몸이 공중에 뜰 정도가 되었다. 그 이후에 손오공은 자유자재로 공중 도약을 하며 장풍을 날려댔다. 중학교 때 만화에서 이 훈련법을 처음 접하고 나서 그 훈련법이 과학적으로 전혀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종아리에 쇠를 차고 다니면, 언젠가는 나도 손오공처럼 공중 도약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손오공이 했던 훈련처럼 요즘 나는 매일 무거운 백팩을 짊어지고 다닌다. 가방엔 그 하루 동안 한 번도 읽지 않을지도 모르는 책들이 가득 들어있다. 나는 매일 4-5권의 책의 무게를 내 두 어깨로 감당하는 고행을 한다. 책을 읽고자 하는 열망의 무게를 확인하듯 말이다. 오늘 가방 현황을 보니, 소설 2권, 작법서 1권, 사회서적 1권이다. 이 책들을 다 읽고 덜어내는 날, 난 어쩌면 공중 도약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직 장풍 쏘는 법은 모르지만, 공중 도약을 하게 되면 뭐라도 날릴 수 있게 되겠지.
난 왜 그 날 읽을 것이 불확실한 책들을 짊어지고 다니는가. 그건 한순간의 후회를 피하기 위해서다. 책을 읽는 우선순위를 정해두었지만, 갑자기 ‘그 책’이 읽고 싶어질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날 아침에 참지 못하고 그 책을 책상 위에 두고 왔다면, 왜 그 책을 하필 오늘 책상 위에 두었을까,를 생각하느라 몇 분을 허비하게 될 것이다. 후회로 허비할지도 모르는 그 몇 분을 위해 난 책이 가득 든 백팩을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다.
책을 백팩에서 덜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데 있다. 전업 작가가 아닌 다음에야 직장인으로 업무를 한 후 주어지는 한정된 여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에 대한 선택지가 눈앞에 놓인다. 지난 석 달 동안 여유 시간에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았으므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 해결은 간단하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던지, 글 쓰는 시간이나 스티밋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내가 직장인인 이상, ‘출력’에 쓰는 시간을 줄여 ‘입력’에 쓰는 것만이 독서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길이다.
신발 신은 원숭이
<원숭이 꽃신>이라는 동화가 있다. 맨발로 생활하던 원숭이가 어느 날 오소리로부터 꽃신을 얻어 신게 된다. 신발을 신다보니 발에 박혀있던 굳은살이 없어졌다. 굳은살이 사라지자, 원숭이는 다시 맨발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처음에 공짜로 신발을 주던 오소리는 신발 가격을 점점 높인다. 원숭이는 어쩔 수 없이 비싼 값을 주고서 꽃신을 사 신게 된다.
예전에 이 동화를 읽었을 때, 난 어쩌면 책이라는 신발을 신게 된 원숭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예전엔 거친 들과 나무를 맨발로 뛰어 다니는 게 가능했다면, 이제는 책이라는 신발을 신지 않고는 삶의 들을 걸어가는 게 불가능해진 게 아닐까 하는.
동화에서는 신발에 적응해버린 원숭이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원숭이를 꾀서 신발을 신긴 오소리를 탐욕스러운 장사꾼으로 여긴다. 하지만, 책이 신발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나는 이 신발에 익숙해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신발 없이도 아무 불편함 없이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또 하나의 세계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신발을 얻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원숭이처럼 난 책 읽을 시간을 얻기 위해 점점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책 없는 맨발은 아프다. 책을 신고 걸어갈 때 삶에 의미 있는 흔적이 남는다. 의미 있는 흔적이 남지 않는 삶은 무기력하고 아프다.
덧붙이는 책썰-나에게 하루키란.
하루키에 대한 내 개인적인 평가는 그의 소설과 에세이에서 극적으로 엇갈린다. 그의 소설은 내 독서 세계에서 평범한 수준의 감흥 밖에 주질 못했다. 하지만 에세이는 최고다. 에세이에서 그가 말하는 톤과 여백, 유머를 난 사랑한다. 이 정도 에세이를 쓸 수 있다면 평범한 소설을 써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다.
하루키의 자전적 이야기가 기반이 된 초기 소설 몇 편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제외하고는 썩 좋은 하루키 소설이 없다. (다시 한 번 지극히 개인적인 기호라는 걸 밝혀둔다. 우리나라에도 어마어마한 하루키 소설의 팬들이 돌을 하나씩 들어 던진다면 내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돌 고분이 되어 버릴 테니까.) 하지만, <하루키 잡문집>을 시작으로 최근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여행기, 일상 에세이집 등은 도서관에서든, 서점에서든 먼저 손을 뻗는 부류다. 내게 있어 하루키는 위대한 에세이스트다. 하루키에 대한 그런 관심 때문에 예전에 집어 들었던 책이 있다. 하루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겐 흥미를 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우치다 타츠루,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
1년 전쯤,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집어 들고 보다가, 열 페이지 지나지 않아서, 무심결에 외쳤다. 야호!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무겁지 않게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파헤치고 있지만, 그 내용의 깊이와 내공이 만만치 않아서, 이런 균형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하고 감탄했다. 가독성과 깊이를 둘 다 갖춘 이런 글쓰기, 아 갖고 싶다!
하루키의 광팬임을 자처한 저자는 알고 보니,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란다.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소재로 한 글들이지만, 보편적인 문학 성찰을 모아놓은 교양서로 봐도 무방하다. 하루키의 작품을 잘 몰라도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이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이라는 초기 3부작은 비슷한 테마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는 별도로, 이 작품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개인사에 깃든 트라우마적 경험을 써낸 것입니다. (중략)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느낄 때 틀 자체를 형성하는 사건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글로 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트라우마적 경험’입니다.
-우치다 타츠루,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 중
내게도 역시 ‘문학적 트라우마’가 존재하겠지. (이 글에서 굳이 이 화두를 다루지는 않겠다) 이렇게 작가는 하루키의 작품을 소재로 하여 다른 문학 작품과 소설가들에게도 일반화시킬 수 있을 만한 얘기들을 한다. 하루키의 작품들이 갖는 의미와 작품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생각, 또 하루키가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 이유 등을 쉬운 말로 깊이 있게 풀어낸다. 다시 뒤적거려도 흥미로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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