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
정신 분석가 라캉이 한말이죠. 자기에게 있어 타자란 나를 완성하는 창조자와도 같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자를 인식하며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의문도 드실텐데 그것보단 다른 시점으로 바라보는게 더 바람직하단 생각이 듭니다. 창조자로서의 자신말이죠. 이를테면 어머니, 반려자, 그룹의 우두머리, 스팀잇에서는 고래가 될 수도 있겠네요. 그들의 응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사람을 다루는 기술,칭찬,따뜻한 격려, 눈 높이를 맞추는것 등 아주 무한한 재료가 있습니다.우리가 가진 그릇에 따라 창조물은 달라지며 그에 대한 보상은 좋턴 나쁘던 고스란히 타자가 아닌 우리에게 되돌려 집니다. 그러고 보면 타자의 응시는 곧 자신의 응시와 다름 아니라 여겨집니다. 우리가 바로 살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서 묻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는 얼마나 양질의 응시를 타인에게 보냈는지를요
오늘은 13년간 키운 딸의 생일입니다. 이제는 엄마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한 시간이 흘렀고 제가 아이에게 보낸 시선만큼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요즘에는 아이에게 기대어 쉬는 때가 엄마의 품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아이는 제게 저와는 다른 응시를 보내줍니다.엄마와 자식간의 조각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생일 선물로 아이가 좋아하는 연예인 이종석씨를 만나보게 해줄 능력은 없어서 그림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