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렷이 선명한 그림자, 풍성해지고 짙어지는 녹음, 바람 한점없이 내리 쪼이는 12시 정오의 햇빛. 내 머리 위 직각으로 내리 쪼이는 강렬한 햇살이 땅을 뜨겁게 데우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반팔 반바지 차림에 아이스커피까지 들고 다니는데, 나는 아직 덥지가 않다. 얇은 긴소매 니트에 아직 바람이 있어 남방까지 걸치고 나왔는데 나에겐 딱 알맞다. 집안에서 좀 몸이 찼는지... 직각으로 내리 쪼이는 강한 햇살이 내 몸을 서서히 따뜻하게 데우는 느낌이 좋다. 마음같아선 맨발로 따뜻하게 데워진 길을 밟고 싶었지만, 마음만 가졌다.
왜 이런거에도 용기가 필요한 걸까..
왜 이런거에도 생각이 많아지는 걸까.
이번주 소화도 잘 안되고 컨디션이 좀 좋치가 않아서 오늘은 차로 몸을 달래며 쉬고 있다.
아침에 부드러운 대추차에 지금은 산책하고 와서 그윽하고 향긋한 생강차 한 잔.
역시 비우니 속이 편하다. 좋다.
속을 비우는 시간이 오랫만인 거 같다. 봄이 찾아오면서 입맛이 마구 마구 돌면서 계속 먹고, 넣고, 뭐 먹을까로 채워가고 있다가... 탈이 난 덕에 이렇게 비우는 시간을 가져본다.
오랫만에 좋다. 속을 비우는 것 뿐인데... 조용하고 고요한 시간이 찾아온 것처럼 마음이 풍요로워 진다. 명상과도 닮아 있는 시간있거 같다. 채우기 보단 비우고, 빠르게 서두르기 보단 천천히 하나씩, 머무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몸과 마음도 같이 비워지고 새 공기로 신선하게 채워지는 기분이다.
아직도 많이 나의 몸에 나의 마음의 소리와 컨디션에 둔하고 무감각했구나 싶다.
천천히, 차분히... 나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딱딱해진 가슴 가운데 부분과 보이지 않는 내 몸속 장기들의 컨디션, 나의 피부가 느끼는 보이지 않는 파장에 주의를 모아본다. 관심을 갖고.. .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상황들
오랫동안 습관화 되어 빨리빨리 판단하고 건너띄고 대충 넘어가는 관계들
나 조차도 나의 마음이 어떤지, 나의 컨디션이나 상황도 모른채 무심하게 지나쳐온 시간들이
나를 눈멀게, 나를 아프게 만든 건 아닐까... 싶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잎파리들이 커지고 절기가 한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만큼 녹음도 짙어지고 푸르러 지는 가운데 오늘 산책하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예쁜 빛깔의 잎파리들을 주워왔다.
속이 탈 난덕분에 이 시간의 소중함 속에, 지금의 자유로움 속으로, 지금 현재에 머무를 수 있는 축복을 만난다.